할매의 약손, 만능 약국 -
배가 아플 땐 약국보다 할매 손
어릴 적엔 배가 살살 아프기만 해도 겁부터 났다.
병원은 무섭고 약은 쓰기만 했다.
그럴 때 내가 먼저 달려간 곳은 할매 무릎이었다.
할매는 다 큰 손주를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무릎에 눕혔다.
그리고 따뜻한 손으로 배를 문질러 주셨다.
할매 손끝의 온기
할매 손은 늘 거칠었다.
김치 담그랴, 논밭 일하랴, 한시도 쉴 틈이 없으니 손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친 손이 배 위를 도닥거리면 금세 아픔이 가라앉았다.
할매는 중얼중얼 주문 같은 걸 읊조리며
배꼽 주변을 둥글게 돌려주곤 했다.
어릴 땐 그게 진짜 약이라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할매 손끝에서 전해진 건 약보다 더 큰 마음이었다.
마을 약손 할매
우리 동네엔 약국보다 할매의 약손이 더 유명했다.
어린아이부터 젊은 엄마들까지 배가 아프면 할매를 찾았다.
누구는 배를 문질러 달라고 하고, 누구는 팔다리 쑤신 데를 만져 달라고 했다.
할매는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웃으며 손을 얹어 주셨다.
그러면 다들 신기하게도 “좀 낫네” 하며 돌아갔다.
할매 손을 이어받고 싶다
요즘은 배가 아프면 약국부터 찾는다.
아무리 따뜻한 물을 마셔도 할매 손맛만 못하다.
어느새 할매가 떠난 지도 오래됐는데,
내 기억 속 할매 손은 아직도 배 위에 얹힌 듯 포근하다.
가끔 내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할매 흉내를 내서 조심스레 배를 문질러 준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지면, 할매가 내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 같다.
손끝으로 전하는 사랑
할매의 약손은 약국이 아니었다.
그건 말로 다 못한 사랑이 손끝으로 흘러나온 작은 기적이었다.
이제 할매는 없지만, 그 약손의 마음만은 내 손끝에 꼭 붙잡고 살고 싶다.
누군가 아플 때, 내 손이 조금은 따뜻한 약이 되어 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