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할배 추억상자

할배의 담배 연기 속 옛날 이야기

시니어 팩트체크 2025. 6.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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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면 피어오르던 담배 연기

어린 시절, 저녁밥을 다 먹고 나면 할배는 늘 마루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셨다.
마당을 바라보며 천천히 연기를 뿜는 모습은 마치 깊은 생각에 잠긴 철학자 같았다.
나는 그 곁에 쪼그리고 앉아 연기 속에서 할배의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할배의 담배 연기

할배의 허풍 반 진담 반

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반은 진짜고 반은 허풍이었다.
어릴 적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손으로 잡았다거나, 산 너머 마을까지 걸어가서 짚신을 팔았다거나.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던 건 할배의 젊은 시절 싸움 이야기였다.
동네 싸움꾼과 한 판 붙어 이겼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할배 눈빛은 소년처럼 반짝였다.

나는 믿음 반 의심 반으로 그 얘기를 들으며
할배가 얼마나 멋졌을까 상상했다.
그렇게 허풍 섞인 이야기 속에서 나는 할배의 청춘을 몰래 엿보았다.


이야기에는 삶의 지혜가 담겼다

할배의 옛날이야기는 단순한 자랑이 아니었다.
어릴 땐 몰랐지만, 그 안엔 늘 한 마디의 교훈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은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주먹보다 말이 세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이야기였지만, 그 말들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담배 연기를 따라 사라진 할배

세월이 흐르고 할배의 담배 연기도 사라졌다.
의사 선생님이 몸에 안 좋다며 금연을 권한 뒤로
할배는 마루 대신 안방에 머무셨고,
그렇게 나와 할배의 이야기 시간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느새 나는 어른이 되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조차 없어졌다.
가끔은 밤늦게 담배 연기 비슷한 안개를 볼 때면
마루 끝에 앉아 연기 속 이야기를 풀어놓던 할배가 그립다.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할배는 떠나셨지만 그 이야기들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이야기할 때
나는 종종 할배의 말투를 흉내 내곤 한다.

담배 연기처럼 허공에 흩어져도
사람 마음엔 오래도록 머무는 게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
문득 할배의 담배 연기가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