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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날의 설렘
학교 다닐 적 제일 설레는 날은 소풍 가는 날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뒷산이나 개울가만 가도 신났는데, 그보다 더 기다려진 건 할배가 준비해 주신 도시락이었다.
친구들 도시락엔 소시지나 통조림 반찬이 있었지만, 내 도시락은 항상 조금 달랐다.
밤새 준비한 도시락
소풍 전날 밤, 할배는 마루끝에 앉아 달걀을 삶고 고등어를 구웠다.
가족들은 다 자는데도 할배는 조용히 작은 등잔 하나 켜두고 도시락 반찬을 손질했다.
그때는 할배가 왜 그런 수고를 하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돈보다 마음이 더 크게 담긴 밥이었다.
친구들 도시락보다 맛있는 밥
소풍날 풀밭에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면, 고등어구이 냄새가 솔솔 풍겼다.
친구들은 내 도시락 반찬이 신기하다며 한 입씩 달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뿌듯했다.
반찬은 투박했지만 할배의 정성이 듬뿍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할배의 마음이 담긴 밥 한 공기
돌이켜보면 할배는 늘 묵묵했다.
자식들 용돈 달라고 하면 무뚝뚝하게 담배 연기만 뿜으시던 분이
손주 도시락만큼은 직접 챙기셨다.
그 도시락은 할배가 말없이 전한 사랑이었다.
지금도 이어지는 도시락의 기억
이제 나는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가는 일이 드물다.
그 대신 가끔 주말에 딸아이와 공원에 나가 김밥을 먹는다.
내가 만든 김밥엔 할배의 고등어구이 같은 깊은 맛은 없지만,
그때 할배가 내게 준 든든함만은 꼭 담으려 한다.
도시락 하나로 이어지는 마음
할배가 만들어 주신 소풍 도시락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그건 허기진 배를 채우는 걸 넘어,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 주는 힘이었다.
지금 내 가족의 도시락에도 할배의 손길이 스며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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